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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쉽게 이해하는 부산50년 도시재생 역사이야기
출처 부동산태인 등록일 2021-12-28 조회수 344
한눈에 쉽게 이해하는 부산50년 도시재생 역사이야기


[부산, 여정의 시작]

부산이라는 도시에 대해 글을 쓰기 2개월 전, KTX 기차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했다.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이 이미 발달되어, 쾌적한 환경에서 부산을 돌아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 당일 출장으로 왔던 부산에서 업무를 본 뒤,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도착한 부산역에서 발걸음을 다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부산역에서 반대편에 보이는 달동네의 왠지 모를 구슬픈 야경이 마음속에 선율이 되어 필자의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한동안 바라본 뒤, 부산에 대해 다시금 마음을 다해 느끼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서울행 기차를 취소하고, 숙소를 잡은 뒤 밤새 부산지도를 다시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늦은 저녁까지 부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였고, 직접 차량을 이용해 부산을 운전하며 도시 날것을 그대로 맛 보기로 하였다.

부산에서 운전하는 것은 서울에 비해 피로감이 있는 편이었다. 마린시티 같은 신도심 말고는 많은 도로와 길이 산지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의 유입으로 급격히 성장한 도시였기 때문에, 도로 구획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던 게 주요 원인으로 보였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부산에서 운전을 잘하면, 세계 어디를 가도 운전을 잘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서울의 도로처럼 구분하기 편하게 일자나 가로망체계로 구축되지 않은 부산의 도로는 ‘도로명 주소’를 적용하기에 매우 불린한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다. 산과 집 사이로 ‘S’자나 ‘N'자 형태로 굽이굽이 휜, 골목과 커브가 섞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도시 외에는 차로 폭 자체가 좁을 뿐만 아니라 차선의 변화가 많기 때문에 운전하는데 피로감이 심했다.

필자가 도로를 언급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모든 건축물은 ‘건축법’상 도로를 기준으로 건물이 만들어지므로, 도로를 경험하는 것은 건축을을 이해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도시를 파악하는 주요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부산의 도로와 건축물을 보며, 그 발생의 순서를 가늠할 수 없었다. 마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듯이, ‘길이 먼저인지, 건물이 먼저인지’ 아리송한 느낌만 가득하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부산의 도시는 6.25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그 시절,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피난민이 된다면 어떤 상황일까? 그 발자취를 느끼는 것은 바로 부산이라는 도시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자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었다.

부산은 해방 후 귀국민을 중점으로 인구가 급속히 유입되었고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이 몰려오면서 공동묘지에 판잣집을 지을 정도로 인구가 급속히 늘어난 도시였다. 이로 인한 영향으로 각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불균형 속에 균형을 이루며 형성되었다. 같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지만 세세한 말투나 낱말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고, 다양한 전통이 섞여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 냈다. 아는 바와 같이 6.25 전쟁 당시 부산은 대전, 대구에 이어 임시수도 구실을 하였다. 임시수도 시절부터 부산 경공업 전성기였던 1970~80년대, 민주항쟁, 1990년대 이후 산업시설들을 분산(울산광역시, 창원시, 강서구 등), 2000년대 이후 도시재창조를 위해 자체계획과 개발을 거쳐 현재에 도달하였다.
골목 골목을 다니며 ‘부산’이라는 도시를 직접 음미해 볼 수 있었고, 부산역에서 느낀 구슬픈 감정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도시의 개요]

부산은 어떤 도시일까? 보통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한민국의 제2의 대규모 도시이자 제1의 항구도시일 것이다. 지리적으로는 목포시와 함께 국토의 끝이라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부산은 경부고속도로, 경부선의 종점이고, 목포는 서해안고속도로, 호남선의 종점에 속하기 때문에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부산은 영남 최대의 도시로 서울특별시가 수도가 되기 전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다. 부산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성종 초기였는데, 그 전에는 동래, 독로국, 거칠산국, 갑화양곡 , 가마뫼고 등의 여러 지명으로 불렸는데, 이 말들을 풀이하자면 가마솥을 엎어놓은 모양인 산이라는 뜻이였다.

대한민국의 법 체제에서 ‘도시개발’ 및 ‘도시계획’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1962년이다. 이 용어의 등장과 함께 도시계획시행령이 1963년 공포되었고, 그 해 1월 1일 서울특별시에 이어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직할시가 되었으며, 1981년 4월 4일 직할 부산시에서 부산직할시로 개편되었다. 이후 1995년 1월 1일 광역시 제도 도입으로 지방자치제와 함께 종전의 다른 직할시들과 함께 부산광역시로 변경되었다.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부산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도시화 현상을 경험하였다. 한국전쟁의 피난민이 선택한 임시거처이자 정착민의 최종거처의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현재까지도 도시계획적 과제인 산복도로와 산동네 그리고 원도심 문제 등도 이 시기에 형태를 갖추었다. 계획적 개발이 아닌 외부 압력에 의해 무계획적으로 태어난 부산시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 과거의 발자취가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하고 있다. 도시가 정비되는 현상을 바라보며, 시대의 요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부산의 도시 발전을 이해하길 바래본다. 즉, 현상이 아닌 도시개발 역사의 흐름임을 인지하며 더욱 깊이 있게 음미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부산을 이야기하다]

국내 제2의 도시답게 광역시 중 가장 많은 15구를 가지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총 15개 구와 1개 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장군과 강서구의 면적이 부산 전체 면적에서 각각 28.47%와 23.59%로, 이 둘을 합치면 전체 면적의 절반이다. 금정구와 부산의 구도심에 해당하는 중구, 동구는 각각 8.51%, 0.37%, 1.28%를 차지한다.



(출처: 위키백과 사전)

부산의 도심은 서면과 남포동이며, 부도심으로는 해운대, 경대, 덕천, 사상, 하단, 부대, 동래, 연산동, 센텀시티등이 있다. 권역별로는 원부산권, 동래권, 서부권, 중심권으로 나눌 수 있다.



(출처: 부동산태인)

현재는 부산광역시 안에 동래구가 있지만 과거에는 동래부 안에 부산포가 있었다. 이 부산포는 현재의 중구, 동구 일대를 말하는 것으로, 구한말 이후 일본과 가깝다는 지리적인 요인 덕분에 남포동-중앙동을 비롯한 중구 일대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커지기 시작하여 마침내 부산시라는 명칭을 달게 되었다. 이후에도 독립적인 군으로 남아 있던 동래부를 역으로 흡수하게 되면서 부산에 편입시키게 되었다. 1980년대까지 부산의 중심으로 활약하던 중구, 동구에서 초점이 움직인 것은 20세기 중후반의 일인데, 특히 동래군과의 사이에 있는 서면 부근은 지역적으로 부산의 중심이라는 특성 덕분에 급속도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그때보다도 훨씬 커진 부산이 강서구, 기장군 등을 편입하면서 98년도에 중구에 있던 부산시청이 지리적으로 부산의 중심에 가까운 연제구 연산동으로 이전하게 되고, 99년도 서면역 2호선이 개업하면서 환승역까지 도맡아 현재의 부산진구 서면은 전 부산을 폭넓게 아우르는 최대 도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부산의 중심, 서면의 모습

서면은 부산에서 교통, 경제, 비즈니스에서 명실상부한 부산의 중심지. 원래는 논밭만 있었던 말 그대로 동래군 외곽의 면이었지만 부산이 지금의 중구, 동구 일대에서 점차 북쪽으로 항구를 확장하면서 1970년대부터 비즈니스의 중심지역으로 점점 발전하면서 국내외 각종 자회사와 무역회사들이 많이 즐비해 있다. 부산지부에 회사가 있다고 하면 대부분 서면 아니면 해운대 신도심에 위치해 있다. 부산 제1상권이면서 제1업무지구이며, 심지어 사설학원 지역으로도 유명해서 각종 외국어 학원과 고시학원들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이다. 서면과 해운대 사이의 지역은 동남권의 새로운 비즈니스 지역으로서, 문현동에는 서울의 여의도와 함께 금융밸리가 신설되면서 해운대와 연결되는 메트로폴리스 라인으로 바뀌어가는 추세이다.

구도심이라 하기엔 여전히 뜨거운 남포동

구한말부터 1980년대까지 부산의 중심 역할을 했던 남포동과 광복동 일대는 현재는 서면에게 제1상권의 위상을 빼앗겼다. 하지만, 실제 수많은 관광객들이 남포동의 향수를 떠올리며 반드시 꼭 찾는 코스중 하나이다. 직접적인 소비가 많은 상권으로 2000년대 이후의 침체기를 제외하면 지금도 상권 자체는 단단하고 안정적인 편에 속한다. 2009년부터 시작된 남포동 크리스마스 축제는 상권 활성화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남포동은 대한민국의 대표 컨텐츠인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는 곳이기도 하다. 부산이라는 컨텐츠를 가장 잘 보여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도시의 정체성과 관광명소, 볼거리등이 다양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산을 여행한 관광객들은 서면보다는 오히려 남포동이 볼거리가 다양하기 때문에 이곳을 추천하는 편이다. 서면은 순전히 부산 현지인들의 상업지구일 뿐 개성이 딱히 없어 외부인 입장에서는 자기네 지역의 번화가와 유사하기 때문에 굳이 찾아갈 메리트가 적기 때문이다. 남포동은 구도심이지만 여전히 지역만의 매력으로 인구를 유입시키고 있다.

신도시를 넘어, 관광의 메카로 부상하는 해운대

1990년대 이후부터 신도시라는 명칭으로 개발되었으며, 해운대(해운대구 남부)가 2000년대 들어 마린시티와 센텀시티를 개발하면서 새로운 주요 도심으로 성장한 지역이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최대 백화점인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도 여기에 있다. 바다를 끼고, 상권이 형성된 해운대는 여름이 되면 전국에서 인파가 몰려드는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로 우뚝섰다.

기타 도심들

서부산권에서는 북구의 구포, 덕천동 및 사상구 부산 서부시외버스터미널쪽과 사하구 하단교차로 동아대 인근에 상권이 발달해있다. 2000년대 들면서 화명 신시가지의 등장과 김해, 양산에서 부산으로 들어오는 환승역을 도맡으면서 발전하고 있는데, 사실상 이쪽도 부산이 공업도시 대신 무역도시 및 소비도시로 재편되면서 점점 이득을 보고 있는 지역이다. 하단교차로 인근도 명지오션시티, 명지국제신도시, 신호산단, 녹산,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주민들이 버스를 타고와서 가장 먼저 도착하게 되는 환승의 요지다. 근방에 동아대 승학캠퍼스가 있어서 대학가도 잘 발달되어 있다. 남구 대연동의 경성대-부경대 사이를 경성대 앞, 통칭 '경대앞'이라고 이 곳은 주변에 경성대, 부경대, 동명대 등 대학들이 밀집해있어 유동인구가 많고, 다른 상권에 비해 술집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금정구 장전동에 위치한 부산대역에서 부산대학교 사이 길목에도 극장, 식당, 옷집, 핸드폰 가게들이 즐비해 통칭 '부대앞'으로 불리고 있는데 과거에는 서면, 남포동 다음 가는 부산 3대 번화가로 불렸을 정도로 이름을 날렸으나 근래 들어선 상권이 많이 쇠퇴한 편이다. 하지만, 단일 대학가 상권 중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거대한 편이고 여전히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

그 밖의 주거환경 정비가 필요한 동네

서울에서는 뉴타운 때문에 사라져가는 달동네 풍경을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는 동네가 많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피난민들로부터 시작된 역사와 그들만의 전통이 있는 공간이다. 도시 미관적 측면에서는 개발과 정비의 대상이지만, 최근에는 부산의 지형적 특성과 어우러진 풍경을 역으로 이용하여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공간으로는 안창마을(동구 범일6동), 꽃마을(서구 서대신4동), 물만골(연제구 연산2동), 금정산성 동네(금성동), 감천문화마을 등이 있다. 특히 부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동네인 금정구 금성동은 주말에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오며 오리고기, 흑염소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즐비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공간은 과거의 삶에 따른 흔적으로, 지형적 특색과 어우러져 독특한 문화와 상권을 만들어 내고 있다. 부산은 전국의 어느 도시보다 깊은 역사와 특색있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형성된 도시인 만큼, 계획적이지 못한 발전을 이루었다. 도시 개발적 측면에서는 아쉬움과 미흡함이 있지만, 반면에 도시재생이 되었을 때, 수많은 기회와 더불어 커다란 가치상승을 이뤄낼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부산 도시의 성장기를 되뇌어보고, 그것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보기로 하자.



(출처: 위키백과사전, 감천문화마을)

[도시 개발 계획의 초행길, 1960 ~ 1970]

1945년 광복을 맞은 해 부산 인구는 불과 281,160명이었다. 4년 후인 1949년에는 약 2배에 달하는 470,750명으로 불어났다. 해외 귀환동포가 부산에 많이 정착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이듬해인 1951년에는 홍수처럼 밀려든 피난민 때문에 인구가 844,134명으로 늘어났다. 1960년에는 116만만명이 되었다.
당시 부산의 도시 인프라는 30만명을 겨우 수용할 능력밖에 되지 않았었다. 산 능성과 허리 부분에는 판자촌을 비롯한 무허가 주택들이 난립하고 자연 도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은 부산에게 무질서한 도시 미관을 선물로 남겼다. 열악한 도시 환경에 대한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1960년대에는 이런 환경을 정비할 필요성이 대두 되었다.
도시계획과 관련된 법과 제도가 새롭게 완성되기 시작한 것이 이시기의 특징이다. 한 예로 1962년 11월 21일 법률 제 1173호로 ‘직할시’로 제정 공포되어, 1963년 1월1일부터 시행되었다.



(출처: 부동산태인)

우리나라 국토 개발 및 도시 개발의 성장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1962년에 시작된 것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68년에는 장기 계획인 국토계획시설 구상이, 1969년에는 원전개발 10개년 계획등이 수립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 무엇보다도 1962년, 1963년에 도시계획법과 도시계획시행령이 제정됐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1960년대 부산 인구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인구증가는 주택 수요를 유발했으나 지형적 특성상 산지가 많아 주거지로 활용 가능한 토지가 부족했던 부산은 인구증가에 대처할 가용토지 확보가 관건이었다. 또한 경제성장 위주로 진행된 전국의 계획 흐름에 맞춰 주거공간에 대한 관리가 부재해 도시환경이 더욱 악화되었다. 이에 따라 도심 인근 고지대에 무허가 불량주택이 난립했고, 부산은 전국에서 가장 주택 문제가 심각한 도시로 전락했다. 지금도 이 당시의 도시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다.

[부산의 태동기, 성장위주의 도시개발 시작 1971 ~ 1980]

부산의 1970년대는 새마을 운동등 무너진 도시를 되살리는 시기였다. 전 국민적인 도시화 계몽 운동이 유행을 넘어 신념처럼 퍼졌던 시기이다. 당시 새마을 운동은 도시와 농촌을 가릴 것 없이 불붙은 휘발유처럼 전국으로 번졌다. 특히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공업화는 도시와 농촌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국가의 발전이 가족과 사회의 발전이고 개인의 행복이라 믿던 시기였다. 국가정책이 부족한 지하자원을 노동집약적 제품의 생산에 집중했던 시기였다. 제조업의 성장은 노동력의 품귀현상을 유발시켰고, 이촌향도 현상을 유발시켰다. 이에 따라 도시로의 인구집중에 따른 도심 팽창이 발생하였고,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 역시 사회문제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계획 분야에 대한 발전을 가져왔다.

이러한 배경으로 1971년에는 도시계획법이 거의 전면적으로 개정됐다. 주요 내용으로는 지역·지구제의 보강과 구역제의 신설, 사유권 보호규정과 도시계획위원회의 보강 등을 들 수 있다. 신설된 구역제들은 도시의 지금의 그린벨트처럼 도시의 무질서한 확장을 조절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특정시설제한구역과 도시개발예정구역, 시가화조정구역, 개발제한구역의 지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정책은 도시의 체계적 발전을 이끌었다는 긍정성이 있는 반면, 개인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했다는 부정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1972년에 부산시 도시기본계획에 의해 도시 전반에 걸친 토지이용계획과 교통계획 및 각종 도시계획시설이 구비됨으로써 간선도로의 건설 확장과 주변 도시와의 연계성이 강조된 체계가 확립됐다. 지금 부산의 간선도로 대부분은 이 시기에 개발 기틀을 마련하였다. 1960년대 2~3%의 도로율보다는 상당히 높은 7~8%로 상승시키는 도시개발을 추진해 지금까지의 도시개발과는 다른 도시계획이 법과 제도를 통해 집행 돼가는 토대를 구축한 시기였다.

[본격적인 부산의 개발 시작, 1981~1990]

1980년대의 부산은 지금까지의 대상형 도시형태에서 환상형 도시로의 전환을 꾀하는 시기였다. 부산의 가야로와 대신동의 대영로를 잇는 구덕터널이 1984년 개통됐고, 중앙로와 대영로를 연결하는 부산 제2터널 그리고 온천동과 만덕동을 연결하는 만덕 제2터널이 1988년 개통됐다. 도심순환도로의 핵심축인 동서고속도로는 1988년에 착공을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도로망의 개발와 구축은 주거공간과 산업공간의 구분을 위해서 시작되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수출입이 증대하면서 도심에서 대형 컨테이너 차량 및 트럭등 도시 미관과 어울리지 않은 차량등 환경이 조성되었다.
‘사람이 살기 마땅치 않다.’라는 불편함에서 시작되었고, 부산의 도시정책이 구체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1981년 6월 23일 착공을 시작한 부산 지하철 1호선은 1990년 노포동에서 서대신동까지 25.9㎞ 구간이 연결되었고 도시 철도망 시대가 개통되었다.

1980년 이전까지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토지구획정리사업이 부산의 도시개발사업을 주도하였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은 도시의 개발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기에는 유용했지만, 실제 개발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불편함이 많았다. 수용권이 없는 개발 사업은 주민의 동의, 민원, 협의등 측면에서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80년대에 들어와서는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택지개발촉진법이 시행되었다. 강력한 수용권을 바탕으로 한 이 법안은 택지개발사업의 서막을 알렸다. 토지전면매수와 수용방식을 토대로 대규모의 주택용지 및 상업용지, 공공시설용지가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부산의 도시정책은 효율성보다는 형평성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택지가 저렴한 주택공급을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이러한 택지 조성은 분양가등 조성원가가 저렴해야 사업수지를 맞출 수 있게 되는 구조였기에, 녹지나 평탄한 임야와 같은 개발제한 구역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택지개발사업의 대부분이 시가지와 접한 구릉부 자연녹지를 대상으로 개발되었고, 더불어 고층의 공동주택이 조성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사하구 다대동 일원, 북구 화명·금곡·만덕동 일원, 영도구 동삼동 일원, 해운대 신시가지 등지에 대규모로 분포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의 형태를 넘어 인구의 변화에 영향으 미쳤다. 부산 인구의 증가 추세는 1980년을 분기점으로 증가율이 둔화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그 대표적인 원인으로 크게 두가지가 손꼽힌다.

첫째는 경제 성장과정에서 경공업 내지는 노동집약적 공업기반을 주축으로 했던 부산이 1980년대 이후 수출여건의 변화 속에서 여타 공업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둘째는 1980년대 들어서 국토개발정책이 능률성 위주의 대도시 중심거점개발방식에서 국토의 균형개발이라는 기준 아래 형평성에 주목한 성장 관리 정책으로의 변화에 따라 외부 인구를 유입시킬 컨텐츠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었고 인구 흡인 요인이 부족하였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계획, 1991~2000년]

1980년대까지를 돌이켜보면, 택지개발촉진법을 바탕으로 부산 도심과 기반시설의 개발에 집중하였던 시기이다. 반면, 1990년대 부산의 도시계획은 도시 내부 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도시 외부와의 연계를 강화하여 광역도시로 발돋움 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되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과거에는 인프라와 기반 시설 확충이 도시개발정책의 주요 컨셉이었지만, 1990년대부터는 도시의 기초적 성장을 뛰어넘어 사회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도시정책이 추진된 것이다. 즉, 부산이라는 도시를 생물체로 보고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부산의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여 도시를 동․서 부산 그리고 구도심으로 나누어 지역별 기능을 배분과 특화를 시키기 시작하였다. 기존 도심에는 도심재개발과 주거환경개선사업들이 추진되었고, 지금의 부산 주거지를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 서부산권은 부산의 생산기지화를 컨셉으로 부산과학지방단지·녹산국가산업단지·신호지방산업단지 등의 개발을 진행하였다. 수도권의 마곡지구, 판교, 광교와 같은 컨셉의 형태로 소위 ‘먹거리’를 만드는 공간으로 구축하였다.

부산신항은 국가 차원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완공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개발제한구역 해제 및 조정에 따라 종합관광단지로 개발하겠다는 전략을 가진 동부산권은 부산을 관광도시로 바꾸었다. 과거의 도시개발 정책이 국지적 개발이었다면, 지금의 개발은 광역권화가 구체적으로 추진되었다. 김해와 양산등과의 상호 연계를 반영한 것이 바로 부산권 광역도시계획이다.

부산과 거리적 접근성이 용이한 지역에 대한 연결성을 확대하였지만, 대부분 구역이 개발제한구역과 같은 녹지지역으로 묶여있어서 실제 개발을 통한 시너지를 내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크다. 바로 이러한 제약 요인이 부산을 메트로시티로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광역도시의 파급력을 바탕으로 도시재생 브랜드를 키우는 부산(2001~현재)

새로운 천년이 시작한 2000년대 부터는 국토계획에 판도가 바뀌었다.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통한 도시개발이 그것이었다. 이 정책은 지금껏 부족했던 토지의 공급을 통해 부산 도시개발에 있어 큰 파급력을 미쳤다. 경쟁력을 갖춘 균형도시로써의 컨셉을 완성해가는 시기였다. 서부산권을 중심으로 한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국제산업물류도시. 에코델타시티를 육성, 개발 함으로써 부산의 산업 발전과 시너지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동부산권은 문화, 편의, 상업시설을 중심으로 개발이 진행되었다. 영화의 전당, 제2벡스코, 오디토리움등이 들어오는 등 우수 콘텐츠의 도입이 ‘해안’ 이라는 자연경관과 어울려 경쟁력을 더하도록 만들었다. 원도심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도 계속되었다. 재개발·재건축등을 통해 기존 주거환경개선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최근에 발생한 청약과열과 집값 상승은 투기나 버블의 형태가 아닌 지가의 가치가 재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부산은 지리적으로 ‘용지’가 부족한 지역이다. 산업, 자연환경, 관광, 경쟁력 그 모든 것을 갖추었기에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최근 도시재생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사업들은 부산의 지리적 특성에 컨텐츠를 가미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즉, 동부권과 서부권 그리고 도심권을 바탕으로 광역적 범위에서 개발이 진행되었다면, 이제는 그 안을 들여다보고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부산의 도시개발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도시재생을 명확히 꿰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글을 마치며..]

부산은 6.25 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집중하면서 경사지 판자촌이 난립하기 시작하였고,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 ‘소막마을’, ‘태극마을’, ‘산복도로 주거지’, ‘구덕 꽃마을’, ‘매축지 마을’등에 피란주거지가 형성되었다. 전쟁 당시 문학 및 예술시설로 광복동 일대의 다방인 ‘밀다원’등이 어두운 역사 속에서 예술을 꽃피우는 장소가 되었었다. 그 거주지들이 일부는 멸실되었고, 일부는 현존하고 있다. 196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아파트 건축’이 주목을 받게 되었고 성장기 부산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인 중구의 ‘부산데파트’, ‘남천동 삼익비치’와 초읍, 대신동의 ‘삼익아파트’가 건축되었다. 부산타워(1973년), 부산시립박물관(1977년), 부산문화회관(1988년), 부산일보 사옥등이 들어섰다. 2000년대에 들어 벡스코등 문화시설이 들어섰고, 세계적 파급력을 가진 문화, 역사, 물류도시로 거듭났다. ‘역사를 모르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최근 대두되고 있는 ‘도시재생’은 새로운 개념이 아닌 과거부터 지금까지 부산이라는 생명체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도입되었던 기법이었다.

부산의 야경이 감성을 자극했고, 이를 계기로 시작된 부산 탐방이었다. 이번 여정은 정비되지 않은 공간은 단순히 ‘노후화되었다,’, ‘쇠퇴하였다’는 시선이 아닌 역사와 사람의 호흡이 섞인 가치공간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각 공간마다 의미가 있고, 삶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필자가 전개한 부산의 개발이야기를 통해 도시라는 생명체의 변화를 느끼며, 부산이라는 맛있는 도시를 맛있게 음미해 보길 바래본다.

마지막으로 일반인들에게 부산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열람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준 부산발전연구원에 감사드린다. 이 칼럼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부산발전연구원’이라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부산의 매력에 흠뻑 취해보길 바란다.

[참고문헌]

“부산지역 근, 현대 역사문화 관광벨트 조성방안 연구” - 부산발전연구원
“부산의 도시 개발사” - 부산발전연구원

부동산태인 칼럼니스트 강부자부동산스터디 대표 부동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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